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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다임교회 (합신) · @YedaimChurch
Words
7,701
Runtime
1:22:53
Speaking pace
93wpm
Reading time
32min
93 words per minute, below the 160 25th percentile of 349 measured videos. That distribution comes from the 349-video hook study.
Opening (first 30 seconds)
자, 이제 에베소서 강의하는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가 에베소서 내용을 토대로 여러 성경들을 좀 찾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제 출연의 수련의 첫 강의 시간인데 아 먼저 여러분의 스스로의 모습 속에서 여러분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예수를 믿은이 믿음이 예 죽어도 저 천국 갈 수 있는 믿음이라고 확신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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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ntences | 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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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gest sentence | 119 words |
| Questions asked |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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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에베소서 강의하는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가 에베소서 내용을 토대로 여러 성경들을 좀 찾아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제 출연의 수련의 첫 강의 시간인데 아 먼저 여러분의 스스로의 모습 속에서 여러분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예수를 믿은이 믿음이 예 죽어도 저 천국 갈 수 있는 믿음이라고 확신하는지 여러분들 오늘 죽으셔도 저 천국에 간다라는 확신이 정말 있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만일에 내가 오늘 죽더라도 나는 저 천국에 간다라는 믿음이 흔들린다. [콧방귀]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늘이 시간부터 수련에 끝날 때까지 초신자처럼 겸손히 말씀에 한번 집중해 보시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구원의 확신이 있다 할지라도 어 내가 주어진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과 일상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배보다 더 우선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 또한 내가 구원의 그 의미를 반쪽자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이 수련에는 뭐 이미 구월의 은혜가 확실하고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고 주 재림을 소망하는 그 자들끼리만 모여서 우리끼리 자축하는 그런 시간이라기보다는 다시금 그 말씀 앞에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여전히 말씀을 사모하는 복된 자로서의 자세로 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이 자리는 소외될 수 없는 자리고 예배될 수 없는 자리라고 다시 한번 되게 보면은 좋겠습니다.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열심과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나의 여러 가지의 어떤 미숙함들은 어 하나님 말씀에 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 도덕적으로 착 착하고 나쁘냐? 이거를 묻기 전에 과연 나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인가? 나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우리가 건강도 어 가끔씩 진단을 합니다. 우리가 건강 검진도 받고 내 몸의 상태를 돌아보기도 하는데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도 진단을 해 볼 필요가 가끔 있지요. 그래서 내가 지금 신앙생활이 어떠한 상태인가? 내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만을 먹고자 하고자 하는 사모함이 있는가? 몸에 병이 나면 먹는 거부터 줄어듭니다. 현찮죠. 내 몸에 식욕이 줄어들고 소화력이 약해지고 먹어도 탈리하고 설사를 합니다. 컨디션이 안 주어지는 거죠. 몸에 탈이 난 거죠. 건강한 사람일수록 몸이 상태가 좋으면 먹는 걸 잘 먹습니다. 그리고 잘 소화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뭐 영적으로 어 문제가 발생한다면 말씀을 듣는게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소화가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보고도 자꾸 설사를 하죠. 자꾸 내보내죠. 그래서 우리가 물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 된다라는 거는 뭐 수천 번을 말해도 어 잔소리드가 아닌 아주 중요한 내용이겠지만 그 말씀을 듣는 우리 성도들 또한 그 말씀에 대한 내용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이 상태가 되어 있는가를 한번 오늘이 시간에 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확신이라는 것.이 구원받음의 확신이라는 것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내 몸에 어떤 뜨거움이 온다 그러든가 어떤 체험이 오면 그러면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그건 아니죠. 확신이라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제대로 인지할 때서부터 나오는 거죠. 우리가 요한일서 5장으로 한번가 보면 좋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입니다. 자, 5장 11절부터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10절부터 10절부터 13절까지 같이 한번 목소리를 읽겠습니다. 준비 시작.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마하는 자로 만드나니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아멘. 자, 성경 말씀을 우리가 왜 계속해서 더 보려고 하고 그 말씀을 우리가 사모해야 된 이유가 뭐냐면 내 안에 하나님께서 영생을 아들을 통해서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새기면서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확신과 동령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붙잡아야 되고 그 말씀을 끊임없이 바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있지요. 나는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예배를 왜 들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굳이 하나님 말씀만을 집중하는게 그게 꼭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신앙은 강요는 아닙니다. 억지도 아니고 뭔가를 결단해서 몰아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이 3일 동안 성경이 나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겸손히 그 성경의 가르침에 길을 기울여 보시라는 겁니다. 신앙보다 내게 주어진 일상이 더 우선시되는 사람들에게도 말씀드립니다. 영적인 일이 자꾸 뒤로 밀리는 그 마음을 정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만 함께 우리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정말로 예배를 갈급하는가?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게 주어진 어차피 나중엔 사라져 버릴 그 일상이 나의 삶에 우선순위에 되지는 아니한가?
[콧방귀] 그 자체가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적인 진단과 아무 상관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 무감각함이 여러분들이 직면해야 될 영적 상태의 증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구원에 대한 참된 확신이라는 것은 웨스트미터 신앙고백서 18장에 의하면 어떤 헛된 소망이나 감정의 기복이 아닙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기분이 좋았다가도 기분 나빠질 수 있어요. 그거에 우리가 토대를 두면 구원에 대한 확신은 끊임없이 흔들려요. 그게 아니고이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입니다. 그것에 토대 위에서 구원의 확신이 되는 것이지 나의 뜨거움이나 감정의 기복에 따라서 구원의 확신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만일에 내가 확신이 좀 약하다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반대로 나는 확신이 확실한데요.라고 라고 해서 자만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는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 시험해 보라고 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자랑할 것도 아니고 또 구원받음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래서 좌절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보기에 지금 나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인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존재인가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면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을 여러분 펼쳐 주시겠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로 창세기 1장 27절 [목을 가다듬음] 말씀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준비. 시작.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다. 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 보다시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라고 나옵니다. 26절에는 뭐라고 나오죠?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도 나옵니다. 형상과 모양이라는 것은 다른게 아니고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이 따로따로 뭐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은 다 하나님을 닮았다. 하나님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대표한다. 그런 의미인 거죠. 누가? 인간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였다? 에덴동산 범죄 이전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어떤 식물도 어떤 동물도 어떤 별들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이 존교하다라는 것은 인간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죠. 인간이 왜 존재가 대단하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여한 거예요. 하나님을 드러낸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존귀한 겁니다. 그러니 이때는 남자와 여자가 다 뭐예요? 사람이라는 한 종류로서 창조된 거죠. 엄청난 존재인 거죠. 이때가 에덴동산 범죄 이전의 인간입니다. 그니까 엄청난 하나님의 그 형상을 반영한 거니까 얼마나 고기한지 몰라요. 죄가 있기 전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지식적으로든지 뭐 감정적으로든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그 형상을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주자 짐승 별 아니 누구다 인간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하나님과 교재하도록 지원받은 영적 존재였죠. 그래서 창세기 2장 7절에 뭐라고 나오죠? 창세기 2장 7절을 여러분의 목소리로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준비 시작.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되었다. 자, 사람이 사람인데 그냥 사람이 아니고 생명이 되었다.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다. 영혼이 있는 사람이 된 거죠. 그때요 생기의 그 코에 하나님의이 생기 하나님의 어떤 그 숨결 이것을 불어넣지 불어넣기 전에는 어떤 존재였냐면 모양으로는 사람의 모양으로 존재했는데 그냥 사람이에요. 사람. 그런데 그 생기를 하나님의 숨결을 그 코에다가 집어 넣으니까 그다음부터 어떻게 되냐? 하나님이 인정하니까 어떻게 되냐? 살아 있는 영혼이 같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혼이 있어요. 근데 이때는 에덴동산 범죄 이전의 상태입니다. 에덴동산 범죄 이후에는 그 하나님의 영혼이 하나님께서 여기서 말하는 영혼은 성령이라고 보시면 안 돼요. 성령을 줬다 그어 버리면이 인간에게 성령이 내주했다 얘기가 돼 버리는데 이때는 내주해야 될 이유가 없어요. 그까 이때는 성령이 내주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 건데 중요한 거는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들어갔다.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갔다. 사람의 모양이 이제는 생명이 됐다라는 건 뭐냐면 살아 있는 영혼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거죠. 영혼이 살아 있는 존재인데 에덴동산 범죄 인간은 어떻게 되죠? 영혼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살아 있는 영혼이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해요. 이때부터는 하나님이 먼저 차단했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한테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가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요. 그래서 어리석은 존재가 되는데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했냐면 에덴 동산 범죄 이후에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하나님이 하셨냐면은 로마서 3장 24절로 한번 미리 한번 맛보기로 보겠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 여러분의 목소리로 자 23절과 24절 읽겠습니다. 23절과 24절입니다. 준비. 로마서 3장 23절 24절 준비. 시작.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갑없이 의롭다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까 여는 설교, 오픈 설교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핵심이 뭐냐? 그 하나님의 영광이 반영되는 핵심은 결국에는 영생입니다. 영생. 영생이라는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다시 교재입니다. 근데이 교재가 에덴 동산 범죄는 끊어졌어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범죄 이후에 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쁘심으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게 하는 건 뭐냐면 결국 그들을 영생케 하는 건데 어떻게 하냐면은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갑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겠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거죠. 뭘로 인정해 줬죠? 의롭다고 인정해 준 거예요. 죄 없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다. 어디 안에서? 예수 안에서만. 근데 이것이 원래 처음에는 그런 것 없이 창세기 1장 창세기 2장 7절에는 뭐냐? 뭐라고 나오냐면은 그런 어떤 아무런 것 없이 그냥 그 코의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영혼히 살아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어요. 굉장한 존재였어요. 원래 에덴동산 범죄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은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아무나 교재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단들 만나 보시면은 이해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지금도 자기들이 노력해서 천국을 가야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천국은 아무나 가는게 아니라고 스스로도 얘기합니다. 왜? 저 천국은 아무나 갈 수 없다고 스스로 얘기해요. 인간의 노력을 해야 된대요. 근데 인간이 노력한다고 될 됩니까?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지 못한다. 다르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없다.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가장 가장 강력한 실제는 뭐냐? 영생입니다. 그 영생을 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극기의 종교, 훈련, 어떤 여러 가지의 고난, 헌신, 희생 이런 걸 통해서 그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라고 성경은 말해 주고 있어요. 어떻게 얻는 거냐면 그리스도 예수의 성향으로 말미암아 얻는 건데 이건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그 선물로 인해서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근데 이것이 에덴동산 범죄 이전에는 그냥 주어졌어요. 하나님으로부터 그냥 주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모든 피조 세계를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어요. 창세기 1장 28절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준비. 시작.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다스리라고 하는요 말의 의미는 통치한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군림하는게 아니고 관리한다. 요런 말이에요. 관리하 쾌어한다. 그 케어라는 말도 다 포함이 안 돼.이 이 단의 의미가 통치한다는 의미인데 그게 막 그게 막 군림한다 이런 개념보다는 관리하고 섬기고 책임진다 이런 관심을 가진다 이런 말이죠. 에덴동산 범죄 이전에 인간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대리하여 존재하는 거기 때문에 모든 거에 관심이 있고 모든 거를 책임지고 모든 거를 관리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이 이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고기한 존재 있는지를 우리는 생각해요. 처음부터 인간이 더러운 존재였고 처음부터 인간이 죄인이었고 처음부터 인간이 비참한 존재가 아니었고 원래 인간은 대단히 고귀한 존재였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리할 수 있는 엄청난 고귀한 존재가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추락했단 말이죠. 비참하게 추락했단 말이야. 어떻게 추락하게 됐는가?이 말이에요. 다른게 아니에요. 창세기 3장 5절로가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이 엄청나가 고기했던 인간이 한 순간에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창세기 3장 5절로 보시겠습니다. 준비. 시작.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할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여러분들이 답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 창세기 3장 5절이에요. 무슨 뭐 저 과거에 부모님 돈을 뺏었거든요. 뭐 누구를 때려서요? 그거는 죄가 아니면 자범죄. 그런 죄 때문에 하나님이 오신 예수님이 오신게 아니고 창세기 3장 5절에서 사탄이 뱀을 통해서 하와를 유혹 유 유혹했던게 뭡니까? 야 그 4절에 저 4절에 보니까 뱀 여자에게 말하되 뭔 소리야 안 죽어 절대 안 죽어 그러면서 뭐래요? 5절에서처럼 너희가 그 선악가 먹잖아. 그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 가지고 선악을 하나님과 같이 될 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선악과 먹지 말라 그러는 거야. 선과 악을 완전히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과 동해질 수 있는 걸 못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선악가 먹지 말라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진다니까. 마치 사탄은 뱀을 통해서 누구를 위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고요? 하와를 위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요. 마치 하나님이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을들은 하와의 반응이 어떻다? 6절에서 어 어떻게 나오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은 보안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탄수롭기도 한 나무인지라. 사탄이 뱀을 통해서 하와한테 무슨 짓거리를 한게 없습니다. 그죠? 언어로만 접근했어요. 그죠? 질문했어요. 그죠? 질문한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 섞여 있지만 왜곡되게 했어요. 하지만 하와는 못 알아먹어요. 그게 거짓말인지를 분별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 말에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말려들더니 사탄이 주는 그 거짓된 확신을 딱 듣는 순간 갑자기 선악가가 어떻게 보이냐? 그 전까지는 접근 금지였던 것이 갑자기 해 볼 만 하겠는 걸로 바뀝니다. 한번 먹어 볼 만 하겠는 걸로 바뀌죠. 그 여기 보면 먹음직도 하고 육신의 정욕이죠. 보암직도 하고 안목의 정욕이죠. 탐스럽기도 하다.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이생의 자랑이죠. 이게 그대로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도 설명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가 보시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로 요한일서 2장 16절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준비 시작.이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니라. 여기 나오지요. 그러니까 결국이 세상적인 것이 뭐냐? 세상적인 것이라는 건 사탄적인 것인데 사탄적인 것이라는 건 다른게 아니에요. 뭐 그렇게 따지면 다 사탄적인 거잖아요. 중요한 건 뭐냐하면 욕심. 어떤 욕심? 먹고 싶어 하는 욕심. 선악가에 대해서 먹고 싶어 하는 욕심. 하나님이 정해 놓은 기준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욕심이죠. 그 육신의 정욕. 그다음에 보암직도 하다. 자기가 볼 때 하와가 볼 때 보암직해 보이는 거예요. 안목. 눈으로서 자기 판단의 정욕이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해. 어. 야, 저걸 먹으면 굉장히 이성적으로도 지혜로워지겠구나. 라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걸 가지고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는 뭐라고 말하냐? 야고보서 1장 15절로가 보시겠습니다. 그럼 성경 많이 찾아야 돼요. 이번 수련의 기간 야고보서 1장 14절 15절인데 한번 볼까요? 14 15절 준비. 시작.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흔히 사람들이 시험을 받는다 이런 말을 합니다. 시험을 받는게 아니고 자기 욕심에 자극받는 거예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향해서 일부러 시험을 준 적은 없어요. 스스로가 미혹이 되는 거죠. 왜? 본인이 욕심이 있어 놓고 옳은 말을 하면 본인이 찔려 가지고 자재 놀라는 거죠. 왜? 본인 스스로가 그 탐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근데 이것에 대해서 왜 이런 원인이 생기느냐 했을 때 그 15절에서 그 욕심이라는 것은 뭐냐 이거예요. 15절에 그 욕심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잉태하는데 뭘 잉태하냐면 죄이 잉태에서 뭘 낳게 뭘 낳냐 하면 그 욕심이 잉태해 가지고 뭘 낳냐 하면 죄를 낳는다. 죄 죄를 낳는 거예. 그 죄들을 계속 반복적으로 낳는 거예요. 근데 그 죄는 나중에 잘하면 어떻게 되냐?이 죄가 이제 죄가 마무리가 돼야 돼요. 아, 내가 이제 이만큼 하면은 다 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창조 행위를 다 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잖아요. 하나님의 창조의 마지막은 뭐예요? 안식이에요. 근데 죄의 완성의 마지막은 뭐예요? 뭐라고 나와요? 사망이에요. 죄는지면 질수록 마지막에 완성이 어디로 가냐면 사망. 단절 두려움으로 가는 거예. 여기서 사망이라는 것은 끊어짐, 단절, 두려움, 불안 다 포함 공포 다 들어가죠. 결국에는 창세기 4장에가 가지고 창세기 3장에서이 선악가를 먹고 난 다음에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되냐면은 하나님이 무서워서 도망갑니다. 하나님이 아무 소리도 안 했지만 스스로가 두려움 속에서 도망가요. 왜?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단절 끊어짐 두려움이거든. 뭐의 완성이? 죄들의 완성이. 그렇다면 에덴동산 범죄 그 결과 인간은 어떻게 됐습니까? 원래 고기했던 존재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하나님을 대리하고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그런 고귀한 존재. 그래서 모든 피조 대상을 관리하고 관심을 갖고 통치할 줄 아는 그런 존재로 부여받은 존재인데 엄청난 존재죠. 그런 존재인데 그런 존재가 어떻게 됐느냐? 로마서 5장 12절로가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 여러분의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입니다. 준비 시작.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창조돼서 하나님을 대리하고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고귀한 존재 하나님이 창조했던 모든 것들을 다 다다를 줄 다스릴 줄 알고 통치할 줄 알고 관리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알았던 그런 존재 하나님과 늘 교재하면서 굳이 성령이 내주할 필요도 없을만큼 하나님과 교재가 늘 항상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 쭉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그런 존재 항상 하나님의 영광에 액기 기스를 드낼 수 있었던 영생의 상태에 있었던 그런 존재가 사탄이 뱀을 통해서 하와에 접근하여서 그 거짓된 질문 앞에 미혹됨으로써 하나님과 동등해 주려는 욕심을 갖고 난 이후부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헛된 욕심을 갖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되느냐면 사망의 상태가 되는데 단절됐어요. 두려움의 상태가 됐어요. 근데 이것이 하와 한 사람한테만 적용된게 아니라 아담 한 사람한테만 적용된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돼요. 그 이후로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를 야기시킨 것이죠. 근데 이것을 향해서 자, 로마서 5장 12절만 보지 마시고 조금 내려와서 다 보면 좋겠지만 19절로가 보세요. 이게 그냥 실수냐? 실수가 아니에요. 로마서 5장 19절. 자, 준비. 시작.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담에게 선악과 먹지 말라라고 명령하셨어요.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아담은 순종했다, 안 했다. 불순종했다. 그럼이 당시 때 아담이 순종할 능력이 없었는가? 아담이 순종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는가? 약한 약한 연약했는가? 부족했는가? 아니요. 아담은 모든 것들을 통치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존재, 권한을 받은 존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 영생의 상태에 있는 존재예요.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불순종했다는 거죠. 즉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거죠. 알면서 불순종한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진노를 야기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로 말미암아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가운데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원제의 핵심이죠.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의 핵심 즉 원초적인 죄책 즉 아담이 지은 그 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까지 연결되냐면은 아담이 태어나는 모든 인간에게 연결되는 거예요. 모든 인간에게. 그래서 이미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개입이 없으면 그냥 죽은 상태입니다. 죽은 상태. 영혼은 있는데 살아 있는 영혼 다시 말하면 원래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그 그거의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이 생명이 되니라. 사람이 아까 찬양했잖아요. 사람이 생명이 된다라고 하는 그 살아 있는 영혼의 존재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이제는 영혼이 있긴 있지만 그 영혼은 원래는 하나님과의 교재를 위해서 존재하게 하신 영혼인데 하나님과의 교재가 끊어져 버리니까 어떻게든지이 영혼은 어딘가를 바라봐야 돼요. 그게 우리 칼빈 선생님 표현대로라면은 종교심이 생니다. 종교심. 어딘가를 경배해야 돼요. 내 영혼은 어딘가에 의존해야 돼요. 근데 어딘가에 의존해야 될 대장이 끊어져봤기 때문에 어딘가를 의존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영혼이 내 몸뚱아이나 뭐 잘 먹고 뭐 몸 관리 잘하고 있는데 내 영혼은 늘 뭔가 갈급한 거예요. 그 어떻게 해야 돼요? 어딘가 의존을 해야 되겠는데 어디를 의존해야 되겠어요? 아 저 큰 나무를 의존하리라. 아 저 사람을 의존하리라. 아 저 죽은 조상을 의존하리라.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의존을 해야 돼요.이 영혼은 영혼은 원래 하나님과의 교재를 하기 위해서 존재한 거기 때문에이 영혼이 하나님과 제가 끊어지는 순간이 영혼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죠. 원초적인 두려움 속에 사망 상태예요. 두려움, 공포. 그러니까 몽를 의지해야 돼요. 근데 의지할 때가 그니까 파스칼에 그 팡세제 말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여기 구멍이 뽕 뚫려 있는 거예요.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공허한 거예요. 열심히 놀러 다니고 열심히 뭐 학사 박사 석사 박사 다 따고 사업에 돈도 벌고 2억 3억 뭐 돈도 좋은데 회사 생활도 하고 다 하는데도 마음이 공허한 거예요. 왜 공허할까? 영혼이 하나님과 교재를 못 하니까 공허한 거예요. 그래서 그 영혼이 또 다른 종교심을 가지고 어떤 강한 대상을 경배해야만 순이 튀는 거예요. 그래서이 땅의 모든 인간은 영혼히 교재를 해야 되는데 교재를 못 하는 거죠. 그런데 그 가운데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기쁘심 가운데 불러 주신 백성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택자라 그래. 성도라 그래.이 사람들은 그 영혼이 다시 살아나라. 전적 부패 있는데 살아라. 그래서 하나님과 교재라는 순간 내 영혼이 찬양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 산도 달라지는 내 삶의 루틴, 내 일상 자체도 힘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그게 깨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아담의 원초적인 죄책이 죄책이 모든 인간에게 다 주어진 거예요.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망 상태, 영원히 죽은 상태, 시체 상태가 되는 그래서 지정의 전부가 싹다 부패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불러 주지 않으면 시체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뭐라 그런다고요? 에베소서 2장으로가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가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가니까 뭐라 그러 뭐라고 나오냐 하면 읽어 볼까요? 에베소서 2장 1절 시작.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원래 예수 믿기 전 당신들은 원래 어떤 존재였냐 이거예요.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예수를 믿었다. 아 아멘이죠. 할렐루야죠. 그런데 당신 처음부터 예수 믿었냐이 말이야. 당신 처음부터 예수 믿었어요?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이 처음부터 예수 믿은 거 아니야. 당신은 원래 어떤 존재였냐면 허물들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다는 거죠. 허물들 허물들과 죄가 무엇인지는 여는 설교를 아까 못 들으신 분들 영상을 통해서 들으시면 되고 지금 이제 넘어갑니다. 자, 세상은 말이죠.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 그러냐면 야, 좀 노력해 봐. 좀 더 열심히 배워 봐. 그러면 훌륭한 사람 될 수 있어. 너는 부족한 것뿐이야. 노력해 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학습이 부족해서 그래요. 조금만 노력하면 돼요. 조금만 더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그 사람을 자꾸 이렇게 누르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은 그 사람의 자존감이 무너져요. 그까 자꾸 그 자존감을 상하게 하지 마세요.이 사람의 그 상한 쓴뿌리를 자꾸 만들게 하지 마세요. 뭐 이제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 자체가 뭐가 능력이 있을 것처럼 얘기합니다. 근데 성경은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뭐라 그러냐면 허물과 죄로 죽었다. 시체가 됐었다. 생명이 끊어진 상태가 됐었다. 말라 비틀어진 상태가 됐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상태가 되었다.이 말이에요. 시체가 되었었다는 거죠. 원래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시체였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죄송하지만 기독교를 싫어할 수 있겠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이 땅의 세상 사람들은 영혼히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영적 시체 상태로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어딘가의 연결이 돼야 되기 때문에 그 연결점을 술로 연결하고 게임에 연결하고 여자에 연결하고 도박에 연결하고 여행에 연결하고 공부에 연결하고 학벌에 연결하고 인간 관계에 연결하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래야만 그 영혼이 뭔가 썩은 물이라도 먹어야 목이 안 타기 때문에 시원한 생수를 마시면 좋겠으나 생수가 없을 때는 썩은 물이라도 먹어서 목을 달라야 되는게 사람이다 이거죠. 죽을 줄 알면서도 그게 병들 줄 알면서도 썩은 물이라도 먹어야 되는 거예요.
[콧방귀] 그게 복음이 없는 예수 믿지 않는 인간의 비참함입니다. 그 사람들이 공부를 못 해서 비참한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비참한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넓은 평수에서 못 살아서 비참한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시체 상태 있기 때문에 비참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많은 것과 공부를 잘하는 것과 좋은 회사에 들어간 것과 비참 영적 비참하면 다른 거예요.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영적 비참한 상태 있는 사람은 그거를 끊결할 길이 없어요. 그 갈급함을 어찌할 줄 몰라요. 그래서 이단에 이단에 빠지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에도 심취하는 거예요. 그래서 철학에 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자기만의 어떤 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거예요. 남들은 이해 못 하죠. 자기만의 그 세계에 들어가는 그 어떤 갈급함과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그 비참함, 인간의이 타락, 인간의이 부패는 어디까지 적용이 되는가? 모든 인간이 그러면 다 부패했으니까 다 사악한 것인가? 그럼 에덴동산 범죄 이후에 모든 인간이 원초적인 아담의 죄책을 다 적용받아서 영혼히 죽은 상태라면 영원히 시체 상태라면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라면 그러면 그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해서 그러면 다 타락하고 다 사악하고 다 범죄자가 되느냐 안 그렇지 않느냐? 나이팅계일도 있지 않느냐? 수바치도 있지 않느냐? 공사 선생도 있지 않느냐? 석가 선생도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이 다 이상한 사람들이냐? 간대 선생도 있지 않느냐? 이순신도 있지 않느냐? 이런 사람들이면 다 타락했느냐?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기독교의 그 말이 맞느냐? 개혁주에서 말하는 그 전적 부패라는 말이 맞느냐? 다 타락했으면 모든 사람이 다 범죄자가 되고 다 소시오패스가 되고 다 사이코패스가 돼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왜 그렇지 않느냐?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윤리적으로 타락한 사람 많지 않느냐? 불신자여도 선한 생활 선한 일 많이 한다. 기부도 한다. 근데 어떻게 당신들이 말하는 전적 구패라는 말이 성경적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비아양을 비판을 비난을 퍼붓기도 합니다. 그거는 이제 성경적인 의미를 몰라서 그럴 수도 있죠. 왜 그럴까요? 전적 부패라고 할 때에이 전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를 못 해서 그런 거예요. 전적 부패라털 할 때이 토탈 전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 부패의 깊이를 말하는게 아니에요. 전적 부패, 전적 타락할 때이 전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부패의 범위를 말하는 거예요. 범위. 깊이를 말하는게 아니고 범위. 범위라는 거. 영역 어떤 영역 전적으로 부패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뭐다? 모든 영역에 미치였다. 모든 영역에서 부패했다. 이런 말이지 가장 악하다.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자, 그리고이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말의 의미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뭐 감정과 지성과 의지와 모든 면에서 어떤 부분에 대하여 타락했다는 거예요. 어떤 부분에 대하여 부패했다라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는 면에 있어서 지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의지적으로나 죽었다이 말이에요. 시체가 됐다. 감각이 없다. 의식이 없다.이 말이에요. 영적인 감각의 센스가 다 끊어졌다. 그러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죠. 제가 이런 비유를 들 때마다 좀 조심스럽긴 한데 어 뭐 제가 장애인 분들을한 건 아닙니다만은 오해 없이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 사람에게 청각의 센스가 다 망가진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해도 처음부터 태어나는 사람한테 청각의 센스가 다 망가져 있는데 싹 다 죽었는데 옆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해도 알아듣습니까?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상대방도 나한테 왜 얘기 안 하냐 이런 얘기할 거예요. 영적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선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어요. 지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의지면에서 마음에 생각하는 바은 뭘 늘 뭐밖에 없어요. 마음이 부패하여 자기 탐욕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공간이 없어요.이 [콧방귀] 영적으로 죽어 있다 그래요. 어떤 이제 조금 더 아주 엄밀한 개혁주의 안에서는 이런 말까지 해요. 유사 기독교인도 있다. 기독교인 것처럼 모양은 갖고 있으나 기독교인이 아니다. 왜 그래요? 하는 짓을 보니 기독교인 것 같은 행동을 하는데 그 사람의 마음의 우선 순위에 하나님 일순위가 안 돼 있다면이 사람은 유사 기독교인이다. 이렇게까지 아주 엄밀하게 아주 강하게 얘기하는 저 개혁주의도 있지만 그거는 이제 뭐 우리 계혁주의 안에서 사실 유사 기독교인이라는 말이라는 건 이렇게 뭐 용어처럼 이렇게 딱 확정된 건 아니나 어 어쨌든 어 종교인은 있을 수 있다. 종교인 종교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을 뭘로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지가 안 되는데 하나님이 인지가 안 되는데 영적으로 센스가 없는데 내 영혼이 어딘가에 기대긴 해야 되겠는데 그것이 그저 이쪽 신쪽 신 이쪽 신 중에 하나의 부류의 신으로서 예수도 그냥 동일한 신처럼 생각하는 존재 경배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대상자가 아니라 그냥 이런 귀신 저런 귀신 요런 귀신 중에 한 귀신으로 예수도 귀신 그 귀신 중에 한 귀신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당연히 온전한 경배가 될 수 없죠.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죠. 영적으로 죽은 존재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교재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말의 의미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일순위가 아니다는 말이죠. 하나님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선에 대해서 마음에 아무런 우선 순위가 없다이 말이에요. 그 영적으로 죽어 있는 거예요.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인 거예요. >> 그러면 불신자들이 행하는이 선행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자, 마태복음 5장으로 한번가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로가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준비. 마태복음 5장 45절 준비 시작.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빚주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리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여기 보다시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니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리한 자에게 내려준다. 누가 내려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려주는 거죠.이 이 땅에 나이팅겔 같은 사람이 있는게 왜 가능하냐면 하나님이 주시는 일반 은총의 배려인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일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배려를 가볍게 생각하면 안 돼요. 불신자들에게도 베풀어 주시는 일반충의 은혜를 예수 믿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별히 은혜를 받은 자라면 불신자에게도 베풀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배려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돼요. 햇빛과 비를 바라볼 때 감사할 줄 알아야 돼요. 그걸 관리할 줄 알아야 돼요. 근데 여러분들이 진짜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일반 운총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왜 그렇죠? 특별 운총의 은혜.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늘 뭐라 그래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보이는 지체들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러면서 일반 은총에 주어지는 햇빛에 대하여 비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거에 대한 이걸 먹을 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잠을 잘 때마다 하나님 내가 잠잘 수기서 감사합니다. 이거는 습관이 아니라 무슨 이거는 무슨 뭐 세뇌가 아니라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걸 아는 사람은 산이 산을 볼 때도 물을 볼 때도 나무를 볼 때도 이것이 의미를 새길 수밖에 없어요. 그니까 감사가 기본이야. 감사가. 근데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어딘가에는 감사해요. 그 제사를 드리잖아요. 그 사람들은 유교인들은 제사를 드려요. 성실하게 규칙적으로 빼먹지 않습니다. 근데 어찌하여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특별한 구원 은혜를 받았음에도이 일반 일상 속에서 주어지는 삶에 대한 감사의 자세가 불신자들이 귀신을 향하여 조상을 향하여 나무신을 향하여 하늘 신을 향하여 바다신을 향하여 돌 무슨 뭐 바위신을 향하여 그렇게 일상을 절제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그 열심보다도 못한다. 그것이 과연 정말로 전적으로 부패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빛을 주셔서 생명을 주셔서 영적으로 살려 주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자세가 있는 자들인가? 그걸 돌아봐야죠. 이거에 대하여 문제점들을 집지 집하게 파헤치면서 지적했던 인물이 야코보스 알미니우스라는 장로였어요.이 사람은 원래 장로교인입니다. 근데 장로교인들을 보다 보니까 어떤 모습이 보이냐면 지금 제가 말씀드린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얘기하면 반율법적 율법 자체가 완전히 다 필요 없는 무법적 물론 율법이 구원이 조건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도이 사랑 율법이 있는데 율법 자체가 다 필요 없다. 도덕도 뭐 중요치 않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면 된다. 이런 젊은발이 복음을 갖고 있는 장로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야코보스 알미니우스 장로는 굉장히 심각한 고민에 빠진 거예요. 저게 기독교인이 맞나? 저런 모습에 구원받은 사람이 맞나?라고 하면서 다른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뭐냐? 인간이 부패한 건 맞는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을 인간이 받아먹을 수 있는 노력을 안 하면 안 될 거 같아요.라고 주장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준 건 부패고 그 부패의 식당에 너들이 와서 먹어야 되는 거지. 그 먹고 나서는 식기도 닦고 감사합니다. 인사도 하고 그러지 않으면이 부패 식사를 너 못 먹어. 하나님이 차려 준 건 맞는데 하나님이 차려준 은혜인 건 맞는데 너희들이 와서 먹어야 된다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뭐예요? 인간의 책임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근데 그것이 먹혔어요. 사람들에게. 왜? 장로교인들을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얘기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얘기하면서 인간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태도와 진정성이 엉망이니까. 이걸 바라보는 야코보스 알미니우스이 장로는 저런 인간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졌다고 인간들에게 줬다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저건 잘못된 거예요.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저러면 안 되는 거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행동해야 되는 거잖아. 결국 인간의 행위가 있었던 거네. 그래 성경을 보다 보니까 마치 그런 성경 본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거를 장로교인들이 놓쳤던 거네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이 엄청난 파장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알미니안 사상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왜? 장로교인들 때문이라고 보시면 돼요. 장로교인들 때문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까 우리 장로교가 역할이 큰 거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나의 행위와 책임은 뭐 구원받은 것은 대지 뭐 대충 살아도 어쨌든 천국은 갈 거 아니야. 천국은 따론 당상 그러면 뭐라 그럽니까 성경은 네가 구원받았는지를 돌아보라. 시험하라. 라고까지 하는 거예요. 이런 본문들을 보다 보니까 야코보스이 알미니스 장로는 그거 봐. 성경을 장로교가 잘못 본 거야. 구원을 따른 방상으로 만들어 놔 가지고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이 땅으로 신앙생활하면 구원 못 받아라고 가는 거죠. 근데 이게 성도들에게 눈을 띄워 버린 거예요. 아, 그렇구나. 내가 생각 신앙생활을 잘못했구나. 정신 차려야 되겠네. 정신 차려야 되는 건 맞아요. 근데 구원이라는 거가 결부시켜 버리니까 다들 놀래 자빠지는 거죠. 그러니까 더 열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게 목회인 거예요. 물론 우리 알미니안 장로님이 잘못 알았습니다만은 어쨌든 그 파급력은 장난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오고 있습니다. 근데 그분이 지적한 것 중에 하나가 우리 장로교인들이 기억해야 되는게 내가 구원에 대하여서 따원 당상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럼 구원파예요. 구원은 어차피 받아놨으니까 이제는 내가 무슨 짓이라든 나는 지옥 안 가, 천국 가. 그거는 구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구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건 구원을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보시면 돼요. 진짜 구원을 받은 자라면 그 구원을 너무너무 감사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이 구원에 대하여서 감사를 표현하면 살까가 되는게 진짜 구원받은 자에게서 나오는 본능적 반응이에요. 근데 구원의 의미를 들어놓고 구원을 받았으면 앞으로 막 살아도 되는 거구나는 구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 본인이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돌아보는게 정상적으로 맞다고 전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 구원을 받았으니까 아무렇게 해서 살아도 되네. 이걸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정말로 구원을 받았으면 너무너무 감사해서 나는 할 수 있는게 없는데만 뭘 주님 앞에 감사를 표현해야 될까요? 주님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존재인데 늘 넘어지고 자빠지는 존재인데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야 되나요? 이게 람대우예요. 그건 율법이 아니에요. 구원받음의 감사의 반응이에요.이 복음을 제대로 증가하지 않다 보니까 무율법 주의자가 된다든지 반대로 율법주의로가 버리는 거야. 둘 다 잘못된 거예요. 둘 다 우린 알미니안 주시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죠.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레미 17장 9절 말씀입니다.
[콧방귀] 같이 읽겠습니다. 준비 시작.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이를 알리요만 여기서 거짓된다라는 말 있죠.이 거짓된다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요. 굽어 있다. 비뚫어져 있다. 이런 말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어 우리가 두 개의 눈이 있는데 아마 골절이 오면 눈이 하나가 내려오죠. 이렇게 옛날에 경기 같은 거 하면 이제 여기 한대 맞아 가지고 골절이 안 골절이 오면 눈이 눈알이 밑으로 쳐져요. 보신 적 있어요? 밑으로 눈알이 쳐지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는데 상대방이 삐뚤 삐뚤을 보이고 그다음에 두 개로 보여. 그 왜 그러냐면 내가 지금 삐뚤어져 있거든요. 여기서 거짓된다라는 말의이 아코브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여기에서 야코브 나오죠. 야곱은 뭐예요? 같은 어근인데 야곱이라는 말도 속인다 이런 말이야. 야곱이라는 말도 속인다 이런 말인데이 거짓된다라는 말도 아코브 삐뚤어져 있다. 뭔가 항상 또 동일하게 들 들어갔는데 본인만 삐딱하게 느껴지는 거죠. 이게 거짓된 거예요. 인간은 거짓된 존재인 거예요. 제대로 이게 들어가지를 않아요. 말씀이 부패한 인간은 그 말씀이 삐딱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항상 모든게 내가 삐딱히 했으니까 다 삐딱하게 들어가는 거야. 계속. 그게 거짓된 상태. 약간의 흠이 있는 정도가 아니고 비틀어져 있다.이 말이에요. 그래서 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에스겔서 36장 26절에서는요. 에스겔서 에스겔 36장 2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입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 여러분의 목소리로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준비. 에스겔서 36장 26절 시작.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게 이제 앞으로 신약 시대 때 주실 또 다른 보회사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마음이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질 것이다.이 말이죠. 무슨 말이? 굳은 마음이라는 건 뭐예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에덴동산 범죄 모든 인간은 자기 느끼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삐딱한 거죠. 삐딱하니까 가인이 아벨 동생의 재물을 하나님이 받으실 때도 기분 나빠서 아벨을 죽여. 죽일 이유가 없어요. 근데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예요. 죽이는 거. 자기 몸을 바라볼 때도 어 창피 안에 삐딱한 거야. 그러니까 가려 버리는 거죠. 모든 거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존재죠. 근데 그렇게 굳은 마음, 딱딱한 마음에게 어떻게 한다? 성령을 주셔서 새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겸손의 마음으로, 청종의 마음으로 순종의 마음으로들을 수 있게끔 하게 하신다. 이런 말이죠. 자, 그러면 이제 오늘 결론입니다. 여러분, 전적인 부패가 성경적으로 정말 사실이라고 한다면 구원의 처음부터 끝까지는 다 누구에 의해서 비롯되는 걸까요? 인간에게서는 비롯될 수가 없어요. 왜?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예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의식할 수 없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어요. 지성과 감성과 의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행할 마음이 없어요. 그게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예요. 근데 그런 존재가 구원을 받았다라는 것은 내 노력인가요? 절대 아니죠. 처음부터 마지막이 하나님의 은혜인 겁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에 나오다시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무게가 곧 내 죄의 무게임을 인지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이죠. 창세기 2장 17절에서는 뭐라 그랬습니까?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어요. >> 죽음으로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이 뜻이에요. 지격하자면 죽음으로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죽음으로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이 굉장히 무서운 말이죠. 그냥 열매 하나 먹은 거 가지고 하나님 너무 째하다.이 수준이 아니에요. >> 피조물이 하나님과 동등이지려고 하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파괴시키는 우주적인 폐론이기 때문에이 죄의 경중은 모욕당한 분의 그 기준에 의해서 결정나는 거예요. 죄이 인간이 어떤 죄의 행동을 많이 했냐 안 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이 죄의 심각성은 우리의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죄가 결정된게 아니고 그 죄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준에 의해서 결정난 거예요. 뭐가? 에덴 동산 범죄의 죄악이 하나님이 보기에는 죄인 거야. 그럼 죄예요. 아니 그거 뭐 겨우 뭐 선악가 그거 하나 열매 가지고 정말 잽째하게 기독교는 이래서 정말로 [목을 가다듬음] 사람들이 못 됐어. 마음 쓰는 것도 너무 이기적이야. 아니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성폭행한 것도 아니고 어 뭐 윤리 도덕적으로 횡령한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런 죄가 더 뭐 더 심각한 죄지. 아 어떻게 그래 선악과 뭐 그 과연 몸을 가지고 하나님이 정말 이런 기독교는 하여튼 좀 생기 하나님이야. 이런 식으로 몰고 하는데 그건 잘못 아는 거예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동이지는 그 욕심을 갖는 것 자체를 하나님은 진노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기준이었어요. 그러면 그게 기준인 거예요.이 기준을 파괴시킨 거예요. 사탄의 뱀을 통해서.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큰 죄악인 거예요. 진노의 불신인 거예요.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근본이에요. 근데 그 죄를 졌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한다? 눈 감아 줄 수가 없어요. 하박국 1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박국 1장 13절. 자,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하박고 1장 13절입니다. 준비 시작.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심으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며 폐역을 참아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아, 하박국 선지자도 아는 거예요. 뭘 아는 거죠?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하나님은 정결하셔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고 폐악을 참아 볼 수가 없는 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는 째악하게 그 선악과 그거 하나 과일 뭐 과일 같은 거 그거 하나 먹음 가지고 진짜 하나님 정말 째하다 이렇게 볼 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고 하나님은 정결하신 분이에요. 어떤 것도 볼 수가 없는 분이에요. 자 신약 성경으로 가시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콧방귀] 자, 하나님이 얼마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째찌함이 그면 어느 정도로 째한가 봅시다. 히브리서 9장 22절 준비 여러분의 목소리로 시작.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하게 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정결하시냐면 죄가 있으면 반드시 끝을 보고맙니다. 하나님은 근데 어떻게 끝을 보냐면 반드시 피가 있어야 돼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자, 로마서 3장으로 가시겠습니다. 이제 로마서 3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로마서 3장 25절부터 26절입니다. 로마서 3장 >> 25절부터 26절입니다. >> 24절부터 26절 준비. 시작.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갑없이 의롭다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누가? 예수 믿는 자들이죠. 25절 읽겠습니다. 시작.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구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시니라.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 자, 하나님이 세상에서 말할 때 째하다, 째하다 그러는데 하나님은 너무나 정결하셔서 반드시 피를 흘려서 죄를 사하시는데 어느 정도로 피를 흘려서 사하시냐면 인간한테 갑지불을 원하는게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갑지불을 하게 하여 인간한테는 갑없이 예수님에게는 값을 지불하게 하여 반드시 피를 흘리게 하여 하나님의 정결함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로마서 3장에서 뭐라 그러냐?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인간한테 갑집을 하라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갑지부를 하게 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갑없이 의롭게 된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정결하심의 끝판왕이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핵심이에요.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에게 쏟아부었느냐? 갈라디아서 3장으로가 보세요. 갈라디아서 3장 [콧방귀] 13절. 여러분이 다 아는 말 같은데 한번 잘 읽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여러분의 목소리로 읽어 주시겠습니다. 준비 다 찾으셨으면 시작.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에서 우리를 성령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시. 여기에 보시면 우리를 위하여 뭐 된 바 되었다? 저주를 받은 바 되었다라고 돼 있어요. 이것이 이제 신명기 21장 13절의 내용을 인용한 거 아닙니까? 원래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이 말이니까 십자가라는 것은 단순한 처형이 아니라 뭐예요? 저주의 상징이에요. 그런데 원래 우리 한글 성경에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되사라고 돼 있거든요. 그게 아니고 원문대로 가자면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다이 말이야. 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의 존재가 되셨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세요.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데 우리를 위하여 저주의 명사가 돼 버렸어. 저주의 명사.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그건 뭐예요? 그리스도는 저주의 존재인 거예요. 저주의 존재. 그냥 그리스도 자체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왜? 저주의 존재니까. 누구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서.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기꺼이 저주를 받으셨어요.
[콧방귀] 얼마나 재미난 얘기가 있냐면 재미난 건 아닌데 충격적인 거냐면 이사야서 53장 가시겠습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서 정결하시고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냐?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셔서 갑없이 우리를 의롭게 했느냐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쏟아붙게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 쏟아붙게 만들었느냐? 이사야 53장 10절입니다. 자 이사야 53장 10절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로 자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자. 자, 주도 나머지는 다 같은 얘기예요. 핵심은 뭐냐면 여기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요 말의 의미가 뭔지 아세요? 상함을 받게 했다.이 말은 어 여러분 그 우리 여성분들 샐러드 만들어 보신 경험 있으시죠? 샐러드. 샐러드 같은 거 만들 때 그 계란 같은거나 이런 거 어떻게 하죠? 으깨죠. 다 으깨죠. 다 부셔버리고 으깨에서 진 눌러 버려 가지고 만들잖아요. 또는 콩물 만고 아까 뭐 우리 콩국수 드신 분들 우리 김집사님 콩구 드신 콩 어떻게 콩을 콩을 다 으깨 버리죠. 그래서 콩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중에 인식이 돼요, 안 돼요? 콩 콩콩 콩콩수 먹을 때 안 되죠. 그냥 그냥 다 으깨져 갖고 물러서 섞어 가지고 아 이게 콩이 다 갈아져서 나온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그걸 보면서 어우 콩이 다 생글생글 다 살아 있네. 이렇게 생각 안 하잖아요. 여기서 상함을 받게 하겠다라는 건 뭐냐면 으깨 버리는 거예요. 예수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자는 거예요. 왜? 그리스도 예수가 저주가 되게 하셨거든요. 저주가 됐다라는 말은 뭐냐면 존재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게 하실 정도로 으깨 버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뭐래요? 원함이래.요 이사야 53장 10절 있죠?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여기 원하사라는 말이 뭐냐면 에베소서 1장 14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기쁨이야. 예.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으깨 버려서 우리를 속양케 하시는게 하나님의 기쁨이에요. 하나님은 그 정도로 죄를 용납할 수 없고 반드시 피를 흘려야만 하는 수 흘려야만 속이 그 다 용서될 수 있을 만큼의 정도로 의로우신 거예요. 근데 그것을 우리한테 값을 지불하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갑없이 그거를 받게 하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공의로움의 기준에 흡족할만큼 그것이 진노가 사그어들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그 공유로움에 그 흡족할만큼 사그러질 수 있는 그 기준이 뭐냐?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동등됨을 채할 것을 즐기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하는데 그냥 존재가 저주가 되게 해서 깨버리게 하는 거예요. 형상도 존재도 보이지 않게 콩이 다 으깨져 가지고 나중에 콩인지 물인지 모를 정도로 그 정도로 완전히 으깨 버리는게 하나님의 기쁨이에요. 왜? 우리를 속량케 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이사야서 53장이에요. 이렇게 엄청난 말씀이 그래서 이사야 53장 이사야 53장 그렇게 얘기하는 이사야 53장 복음의 장이다. 복음의 장이다 하는 얘기가 괜히 복음의 장 복음 이거 이사야 왜 복음의 장이지 하나를 뭐 기회가 되면 이거 다 하지 하여튼 오늘 대표적인 거 하나 본 거예요. 충격적인 거예요. 그거를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세요?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답없이 우리한테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예수님을 저주로 상태로 만 저주가 되게 하시고 으깨 버려서 상한 존재로 만들게 하셔서 우리를 속양케 하실 그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그 하나님의 정결하심이 예수님한테는 어떻게 고백되어지는 줄 아십니까? 마태복음 27장가 보세요. 마태복음 27장 46절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이 마태복음 27장 46절만 읽겠습니다. 준비 시작. 제 9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엘리 라마사막다니 하시니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한글 성경을 번역했는데 이게 원래 엘리엘리 라마라는게 라마라는게 뭐냐면 어찌하여가 아니고 무슨 목적으로 >> 무슨 목적으로 나를 저주의 존재가 되게 하셨나이까이 말이에요. 무슨 목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은 단 한 번도 교재가 끊어지지 않는데 마치이 순간은 교재가 끊어진 것 같은 성부와 성자가 교재가 끊어진 것 같은 단절을 처음 여기서 보여 줘요. 성부와 성자는 절대로 끊어질 수 없습니다. 우린 3일차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근데 그 3일자 하나님은 도저히 끊어질 수 없는 존재인데 저주의 대상에 대해서 끊어진 것 같은 오해를 일으킬 만한 엄청난 표현이 뭐냐면 버리셨다이 말이에 버리셨다. 버림 받았어요. 누가?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우리의 속량 때문에. 하나님은 그 정도로 정결하시고 하나님은 그 정도로 죄를 절대로 간고하지 않으셔서 피를 반드시 내야만 하나님의 진노가 사그라질 정도로 하나님은 완벽하시고 정결하시고 의로우신데 그걸 우리한테 요구했으면 우리는 싹 죽었어요. 근데 우리한테는 값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한테는 값 없이 의롭다 여겨 주시는데 그 중제자가 중보자가 누구냐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님은 버림을 받아야 돼. 하나님과 단 한 번도 끊어질 수 없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 요한복음 1장에 최초의 말씀이라고 하는 분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할 정도로이 교재가 끊어진 적이 없는데 버림을 받을 하나님과 마치 교재가 끊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에요. 왜 그러냐? 이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에요. >> 고린도서 5장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우리를 대신해서 그걸 하게 하신 거예요. 원래 우리는 어떤 존재였는데요? 로마서 5장으로가 보세요. 원래 우리가 어떤 존재였냐고요? 로마서 5장 6절가 보세요. 로마서 5장 6절부터 읽겠습니다. 6절부터 10절에 보십시오. 자, 6절에 보시면 뭐라고 나오냐면 우리가 아직 뭐 할 때에 연약할 때에 그다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죠. 자, 여기서 연약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뭐 진짜 아유, 제가 좀 약해서요. 이런 수준이 아니고요. 여기서 연약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능력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무능력한다해요. 구제 불능이에요. 우리는 우리는 알아도 행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존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도 행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안다 하더라도 못 하는 거예요. 그게 무능력한 존재예. 뒤에 뭐가 왔어요? 주문이 온 거 같아요. 한번가 보세요. >> 네. >> 연약하다라는 말은 무능력자라는 뜻이에요. 두 번째 경건하지 않다. 경건하지 않다는 말도 마찬가지죠.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을 인지하지 않는 자죠. 8절에 뭐라 그럽니까? >> 죄인이라고 나오죠. 자, 더 강력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10절에 가세요. 곧 우리가 뭐 되었을 때요? >> 원수되었을 때. 점점점 단어가 세집니다. 6절부터 10절에서 사도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얘기하는데 어떤 존재였다? 무능력자, 구제불능자, 경건하지 아니하는 자,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인재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머릿속에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자. 그다음에 그걸 뭐라 그래요? 8절에서는 죄인. 그다음에 10절에 가서 뭐라 그래요? 원수. >> 하나님과 원수. 근데 그런 원주 같은 존재를 위해서 로마서 8장 31절가 보세요. 로마서 8장 32절. 얼마나 웃긴 웃기 웃긴게 아니라 얼마나 신기한지. 32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내어 주신이 요걸 보세요. 아니 하나님과 원수라며 우리가 원수잖아요. 근데 원수를 위해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했다. 그러면서 으깨 버릴 정도로 상하게 만드시는게 하나님의 기쁨이다. 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콧방귀] 저주받는 그 저주의 깊이가 우리를 사랑하는 깊이 거예요. 예수님이 저주의 존재가 되실 정도로까지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렸었다는 얘기는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적으로 놓지 않으시겠다라는 강력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저주가 되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2장으로가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입니다. 준비. 시작.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패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면 그리스도께서 헛대히 죽으셨느니라. 그러니까 모든 이단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인간의 율법의 행위로 구원이 되고 의롭게 되어진다면은 그리스도는 헛대주인 것이고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거야.
[콧방귀] 예.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알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저주의 존재가 버려진 거야. 그 정도로 당신을 사랑한 거야. 그런데 당신이 또다시 인간의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의로워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에게는 없는 거야.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준비. 시작.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를 받은 바 되의 저주에서 우리를 송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이 34절까지 읽겠습니다. 시작.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고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전적으로 부패했던 존재인데 하나님의 그 선하심을 0.1%도 1%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한 한 공간도 없는 존재인데 그저 내 탐욕과 내 야망과 내 욕심과 내 정역으로 사는 그런 존재인데 그런 존재를도 뭐가 이쁘다고 원수라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아 세상 보통 보통 생각할 때 원수는 어때요? 원수를 죽여야 되잖아요. 내가 미워하는 인간 죽여 버려야 되잖아요. 내가 싫어하는 인간 미워하는 인간 날 상처받게 아닌 인간 날 기분 나쁘게 하 인간 내가 싫어하는 인간하고 말도 안 섞어야 되잖아요. 그게 우리 인간이잖아요. 그럼 하나님에게 원수잖아요. 원수하고는 말도 안 묻혀요. 얼굴도 안 쳐다봐요. 죽여 버려야 돼요. 그는 [목을 가다듬음] 죽여 버려야 될 대상자, 마땅히 죽여 버려야 할 대상자를 오히려 우리를 안 죽이고 하나님과 늘 교재하시는 사랑의 대상자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기꺼이 으깨 버려서 조주케 하여 버림받게까지 하시면서까지라도 우리를 속령하신 거예요. 그러니 구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뭐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죠. 하나님께 영광이죠. 하나님께만 감사죠. 그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에요. 그 의로우심 때문에 전적으로 부패한 우리가 의로운 전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걸 함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이 시간도 주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복음의 액기스, 복음의 정수에 해당되는 전적인 부패에 대한 내용을 많은 시간에 걸쳐서 다 다룰 수 없기에 짧은 시간이지만이 시간을 통하여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을 짧게라도 나누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전수하고자 됐던 내용을 고히 전달해 보려고 했었던이 시간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조명케 하시고 여기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또한 그 종교혁 시대 때부터 내려온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온 그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의 고백과 그 감사를 고두고 고고스란히 함께 공유하며 다음 세대와이 땅에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까지 힘 있게 증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고 지혜와 용기를 다하여 주시 주시옵서. >>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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